
고혈압은 현대인의 가장 흔한 만성질환 중 하나입니다. 당뇨와 함께 만성질환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고혈압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에 기여하는 정도가 가장 높은 질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혈압이 질병으로 인식되고 치료법이 확립되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행착오가 필요했습니다. 혈압을 측정하는 방법조차 없었던 시대부터 감염으로 혈압을 낮추려는 위험천만한 시도까지, 고혈압 치료의 역사는 의학 발전의 험난한 여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혈압측정법의 발견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극, 그리고 현대 치료법 확립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혈압측정법의 발견과 발전 과정
혈압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압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1643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토리첼리가 유리관에 수은을 넣고 뒤집어 세우면 항상 76cm 정도의 높이로 수은 기둥이 선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실험은 인류가 최초로 대기압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크기를 측정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기 압력의 크기는 760mmHg로 표기되었고, 이후 혈압도 같은 단위를 사용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대기압 760mmHg에 비해 우리 혈압의 정상 수치는 수축기 120, 이완기 80으로 훨씬 낮지만, 동맥에서 피를 뿜어내는 힘은 상당히 강력합니다. 이론적으로 동맥을 째면 피가 2~3m 높이까지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대기압의 존재를 확인하고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관을 따라 피를 흘려보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자,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혈압을 측정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압력을 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동맥 혈압 측정은 1733년 영국에서 시행되었는데, 목사이자 수의사였던 헤일스가 말의 동맥에 파이프를 꽂아 넣고 유리관을 연결해서 치솟는 피 기둥의 높이를 측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말의 혈압이 약 200 정도 된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 방법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10년이 지난 1847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환자 또는 의대생의 동맥에 관을 찔러서 높이를 보는 방식이었고, 대상자는 죽었거나 많이 다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혈압을 재는 것 자체에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측정 방법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전환점은 1855년 독일 의사 피에로트르가 동맥 혈관을 누르면 맥박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찾아왔습니다. 동맥을 맥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누르면, 그 압력이 곧 혈압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손가락 느낌으로 재야 했기 때문에 부정확했습니다. 1881년 오스트리아의 폰 바슈가 혈압-맥박계를 발명하면서 측정이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기압 대신 수액을 이용해 물로 압력을 재는 방식으로 길이가 작아지고 정확도가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1896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혈압계와 아주 비슷한 형태의 수은 혈압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사들은 여전히 혈압을 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열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고 기침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혈압계는 단순히 '신기한 도구' 정도로 여겨졌을 뿐입니다.
| 연도 | 발견/발명 | 의의 |
|---|---|---|
| 1643년 | 토리첼리의 대기압 측정 | 압력 개념 확립, 760mmHg 단위 탄생 |
| 1733년 | 헤일스의 말 동맥 측정 | 최초의 혈압 측정 시도 |
| 1855년 | 피에로트르의 압박법 발견 | 비침습적 혈압 측정 원리 확립 |
| 1881년 | 폰 바슈의 혈압-맥박계 | 측정 정확도 향상 |
| 1896년 | 수은 혈압계 개발 | 현대적 혈압계의 원형 |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극과 고혈압 인식 전환
혈압계를 임상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쿠싱 박사입니다. 쿠싱 증후군으로 유명한 이 미국 의사는 이탈리아에서 친구가 만든 혈압계를 가져와 자신의 환자들을 측정했습니다. 뇌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의 혈압이 높다는 것을 발견한 쿠싱 박사는 1900년대 초반부터 혈압이 높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류 의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혈압이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혈압을 재면 낮았고 맥이 없었기 때문에, 혈압이 높아야 피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승전국으로 이끌고 전후 질서에서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든 위대한 정치가였던 루스벨트는 원래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탔습니다. 전쟁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혈압이 계속 올랐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루스벨트는 축농증이 있어서 두통이 생긴다고 생각해 이비인후과 의사를 주치의로 고용했습니다. 1945년 전쟁 중 대통령의 주치의라는 막중한 책임을 진 이 이비인후과 의사는 열과 성을 다해 환자를 봤지만, 혈압이 190을 늘 넘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치의는 "나이가 들수록 혈압이 올라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루스벨트를 안심시켰고, 두통 치료를 위해 사혈까지 시행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1945년, 탱크와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 미국 대통령에게 행해진 치료였습니다. 결국 루스벨트는 뇌출혈로 사망했고, 사망 당시 혈압은 300/190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달변가였던 루스벨트가 단어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 명백한 뇌출혈 전조증상이 있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치료해서 살았을 환자였지만,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루스벨트의 사례는 고혈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사용자 비평에서도 지적했듯이, "혈압 높을수록 좋다"는 당시 인식이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보험회사는 1928년부터 고혈압이 있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통계 데이터를 발표했지만, 의사들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무시했습니다. 의사 집단의 보수성과 기존 이론에 대한 맹신이 루스벨트의 비극을 만든 근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도 미국과 영국에서 뇌졸중이 계속 늘어났고, 보험회사는 매년 고혈압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이터를 발표했지만 의학계의 변화는 더뎠습니다.
감염치료 시도와 현대 약물의 등장
1960년대에 들어서야 주류 의학계는 고혈압을 치료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약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감신경을 자르는 수술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다른 치료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1925년 혈압 210/130인 환자의 교감신경을 잘랐더니 혈압이 떨어지면서도 환자가 살아남았던 사례가 있었지만, 이는 일반적인 치료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감염 환자들의 혈압이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패혈증에 걸리면 혈압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감염을 일으켜 혈압을 낮추고 항생제로 감염을 치료하면 되지 않겠냐는 발상이었습니다. 이 치료법은 사용자 비평에서도 지적했듯이 충격적이고 위험천만한 시도였습니다. 의사들은 균을 배양해서 환자의 혈관에 직접 주사해 패혈증을 일으켰습니다. 혈압이 지속적으로 조절되어야 하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감염 상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혈압이 떨어지면 항생제를 주는 방식이었지만, 환자들이 너무 빨리 죽었습니다. 페니실린이라는 '마법의 탄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치료법은 성공하지 못했고, 다행히 금방 폐기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시도되었는지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고혈압 치료에 대한 이해가 이처럼 부족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감염 치료의 실패 이후 다른 약물들이 시도되었습니다. 혈압이 떨어지긴 했지만 눈이 침침해지거나 혈관을 확 열어버려 일어날 때마다 기절하는 등 부작용이 컸습니다. 기립성 저혈압 같은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이런 약들도 널리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획기적인 전환점은 이뇨제의 등장이었습니다. 이뇨제는 용량으로 소변을 조절할 수 있고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었으며, 지금도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프로프라놀롤, 즉 인데놀입니다. 이후 부작용을 최소화한 약들이 계속 개발되어 현재는 혈관 확장제,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에 작용하는 약 등 다양한 치료 옵션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고혈압이 있어도 꾸준히 관리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고 얇아지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높은 압력을 받으면 뇌의 미세 혈관들이 터져 뇌출혈이 생깁니다. 따라서 본인의 적정 혈압을 찾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압이 높았던 분들은 너무 많이 낮추면 어지럽기 때문에 개인에게 맞춰서 조절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조기 사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입니다.
| 시기 | 치료 방법 | 결과 |
|---|---|---|
| 1925년 | 교감신경 절제술 | 효과는 있으나 너무 위험함 |
| 1960년대 | 감염으로 혈압 낮추기 | 환자 사망률 높아 폐기 |
| 1960년대 중반 | 초기 혈관확장제 | 기립성 저혈압 등 부작용 심각 |
| 1960년대 후반 | 이뇨제 | 최초의 안전한 치료제, 현재도 사용 |
| 1970년대 이후 | 프로프라놀롤(인데놀) 등 | 부작용 최소화, 다양한 약물 개발 |
고혈압 치료의 역사는 의학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해왔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여정입니다. 대기압 측정부터 시작해 수백 년에 걸쳐 혈압측정법이 발전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극을 거쳐 고혈압의 위험성이 인식되었으며, 감염치료라는 위험한 시도를 거쳐 마침내 안전한 약물이 개발되었습니다. 사용자 비평에서 제기한 의문처럼, 고혈압 기준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약 개발 이후 사망률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는 추가로 탐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60~70년 전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며, 가장 큰 문제는 약이 아니라 사람들이 약을 꾸준히 먹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혈압 약을 제때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뇌졸중과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고혈압 진단 기준은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했나요? A. 초기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통계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기준이 정립되었습니다. 현재는 수축기 140mmHg, 이완기 90mmHg 이상을 고혈압으로 진단하지만, 최근에는 더 엄격한 기준인 130/80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나이와 동반질환에 따라 목표 혈압이 달라지며, 개인별 적정 혈압을 찾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고혈압 약을 평생 먹어야 하나요? A. 대부분의 경우 고혈압은 만성질환이므로 지속적인 약물 복용이 필요합니다. 다만 생활습관 개선(체중 감량, 저염식, 규칙적인 운동)으로 혈압이 정상화되면 의사와 상담 후 약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의로 약을 끊으면 혈압이 급격히 올라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Q. 혈압이 높아도 증상이 없는데 치료가 꼭 필요한가요? A.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릴 만큼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뇌출혈이나 심장질환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가 많습니다. 혈압이 높으면 혈관이 지속적으로 손상되어 뇌졸중, 심근경색, 신부전 등이 발생할 위험이 크게 증가하므로, 증상이 없더라도 반드시 치료해야 합니다. 현대 약물은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이므로 꾸준히 복용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 [출처] 의학의 역사 - 고혈압 편: https://youtu.be/z5DbXDjTzWg?si=0OCn2E5txNyK25wV